개요

 

하쿠몬의 유래/주오대학의 발자취(연혁/역사)

하쿠몬의 유래

주오대학을 상징적으로 ‘하쿠몬’이라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885년, 18명의 젊은 법률가들이 ‘현실 응용의 기초 배양’이라는 기치 아래 주오대학의 전신인 영국법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일본 내 주류였던 프랑스법이 아닌 현실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미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사법제도 확립과 근대화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영국법률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 근대사회에 걸맞은 인재를 육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신진기예의 강사진에 의한 열성적인 강의와 실무 중심 교육을 특색으로 하는 본교에는 장래에 법률가로서 사회의 정의ㆍ공정을 실현하려는 높은 뜻을 품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함께 학문을 쌓은 후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갔습니다.

졸업생 중에는 사학 출신자로서 처음으로 법학박사가 되어 후에 ‘꽃의 변론’이라는 칭송을 받은 변호사 하나이 타쿠조, 1945년 전쟁이 한창 치열해지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제21회 중의원의원 선거 무효판결을 내린 대심원 판사 요시다 히사시 그리고 전쟁 전후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자유주의사상에 기초하여 언론활동을 전개한 하세가와 뇨제칸 등, 뛰어난 식견을 지닌 법조인과 저널리스트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현실 응용의 기초 배양’이라는 본교의 독자적인 건학정신,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태도, 이러한 것이 ‘백(하쿠)’색이 가진 ‘정의’, ‘결백’, ‘순수’, ‘진실’의 이미지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1926년, 완성된 스루가다이 교사의 벽면 중앙부를 ‘中央(주오)’라는 두 글자로 꾸며 만들었다는 점도 함께 작용하여 쇼와 초기에 ‘하쿠몬’이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찍이 영국법률학교로 출발한 본교는 현재 6개 학부, 대학원 7개 연구과, 전문직대학원 3개 연구과 외에 9개의 연구소, 4개의 부속고등학교※, 2개의 중학교※를 거느린 종합학원으로 성장했습니다.
125년이란 역사 속에서 배양되어 온 비판정신을 잊지 않은 사학의 자유로운 학풍은 ‘하쿠몬’이라는 말과 함께 지금도 주오대학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주오대학의 계열소속교이던 주오대학 요코하마 야마테 중학교ㆍ고등학교는 2010년 10월부터 주오대학 부속학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주오대학의 발자취(연혁/역사)

연혁

연혁
1885년 영국법률학교 개교
1889년 학교명을 도쿄법학원으로 개칭
1905년
 
학교명을 주오대학으로 개칭
경제학과 개설
1909년 상업학과 개설
1920년 법학부ㆍ경제학부ㆍ상학부, 대학원, 대학 예과 설치
1926년
 
스루가다이 교사 완성
칸다 니시키쵸에서 이전
1931년 야간학부 개설
1935년 창립 50주년 기념강당(대강당) 완성
1948년 주오대학 상업학교를 주오대학 고등학교로 개편
통신교육강좌 개강
1949년 신제 대학 발족
1부 법, 경제, 상, 공학부 개설
2부 법, 경제, 상학부 개설
1951년
 
재단법인 주오대학을 학교법인 주오대학으로 개편
문학부 개설
1962년 공학부를 이공학부로 개편
1963년 주오대학 스기나미 고등학교, 주오대학 부속고등학교 개교, 이공학부 교사 완성
1978년 타마 캠퍼스 개교
1980년 스루가다이 교사 폐교제
1988 스루가다이 기념관 완성
1993년 종합정책학부 개설
2002년 이치가야 캠퍼스 개교
어카운팅스쿨 개교
2004년 로스쿨 개교
2008년 비즈니스스쿨 개교
2010년
 
이치가야 타마치 캠퍼스(미들 브리지) 개교
주오대학 부속중학교 개교
주오대학 요코하마 야마테 중학교ㆍ고등학교 개교※

역사

영국법률학교의 탄생

영국법률학교가 초대 교장 마스지마 로쿠이치로 등 18명의 젊은 법률가들에 의해 도쿄 칸다 니시키쵸에 문을 연 것은 메이지 유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885년의 일이었습니다.
창립자들은 ‘현실 응용의 기초를 배양한다’는 기치 아래 현실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미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새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 그중에서도 법률가를 육성하는 길이라는 굳은 신념을 안고 법학교육에 힘을 쏟았습니다.
개교 당시 불과 97명이었던 학생 수가 2년 후에는 600명을 넘었으며, 제국헌법이 제정된 1889년에는 그동안 사용하던 낡은 옛 무사 저택을 대신해 세련된 벽돌구조의 2층 새 교사를 신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보다 폭넓은 법학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학교명을 도쿄법학원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도쿄법학원의 기개

도쿄법학원은 도쿄의학원, 도쿄문학원과 함께 일본 최초의 사립 종합대학을 구상하였습니다만, 당시 민법ㆍ상법을 둘러싼 법전논쟁의 영향으로 인해 그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였습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관지 '법학신보'는 이러한 논쟁 과정에서 발행금지 처분을 받은 '법리정화'의 뒤를 이어 1891년에 창간되었습니다
14년에 걸친 도쿄법학원 시절에는 1892년에 발생한 칸다 대화재로 교사가 전소하여 귀중한 도서와 기록이 소실되었습니다만, 졸업생과 타교의 대대적인 지원과 협력으로 빠르게 재건하였습니다. 그 이후 해외 유학생 파견에도 힘을 쏟았고 원우회(나중의 학원회)를 통해 졸업생과 모교와의 유대를 다지는 활동도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학을 향한 여정

위의 세 학원 연합계획이 좌절된 후에도 대학조직으로의 개편을 수시로 검토하던 법학원은 1903년 사단법인을 조직하여 학교명을 도쿄법학원대학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 후 창립 20주년이 되는 1905년에 경제학과를 신설하면서 학교명을 주오대학으로 개칭하고, 또한 1909년에는 상업학과를 설치하여 법학ㆍ경제ㆍ상학의 3개 학과를 거느린 대학으로서 종합대학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中央(주오)’라는 학교명은 마스지마 일행이 수학한 영국의 전통적인 법조인 양성기관 중의 하나인 Middle Temple의 일본어역 ‘中央法院(주오호인)’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

칸다 니시키쵸에서 스루가다이로

1918년에 공포된 대학령을 기반으로 사단에서 재단으로 법인조직을 변경하고, 오랫동안 고대해 온 법학부ㆍ경제학부ㆍ상학부ㆍ대학원ㆍ대학예과로 구성된 종합대학(구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1920년의 일이었습니다.
대학으로 승격한 시기를 전후하여 실수로 인한 화재(1917년)와 관동대지진(1923년)으로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만,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기 위해 40여 년간 지내 온 칸다 니시키쵸에서 1926년에 스루가다이로 이전하였습니다.
본교는 스루가다이에서 반세기 남짓 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야간학부(1931년), 공업전문학교(1944년), 통신교육학부(1948년)를 개설하고, 1949년에는 신제 대학을 발족시켜, 기존 학부에 이어 공학부를 개설하였습니다. 그 후 1951년에 문학부와 신제 대학원을 설치하는 한편, 같은 해에 재단법인에서 학교법인으로 조직 변경하였으며 1962년에 공학부를 이공학부로 변경하였습니다.

타마 캠퍼스로의 이전과 도심으로의 전개

-21세기의 주오대학-
1978년에 문과계의 4개 학부가 타마 캠퍼스로 이전합니다. 그리하여 수목이 풍부한 타마 캠퍼스에는 문과계가, 편리한 환경의 코라쿠엔 캠퍼스에는 이공학부가 자리 잡게 됩니다. 주오대학은 이 두 캠퍼스를 기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1993년 타마 캠퍼스에는 종합정책학부가 신설되었습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보다 수준 높은 전문직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국제회계(2002년), 법무(2004년), 전략경영(2008년)의 전문직대학원 3개 연구과를 잇달아 개설했고, 이치가야 타마치(미들 브리지), 이치가야, 코라쿠엔의 도심 캠퍼스를 거점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올해 125주년을 맞이한 주오대학은 새롭게 주오대학 부속중학교, 주오대학 요코하마 야마테 중학교ㆍ고등학교를 개교하고 각 캠퍼스와 상호 연계하여 현재 6개 학부, 대학원 7개 연구과, 전문직대학원 3개 연구과 외에 9개의 연구소, 4개의 부속고등학교※, 2개의 중학교※를 거느린 종합학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주오대학의 계열소속교이던 주오대학 요코하마 야마테 중학교ㆍ고등학교는 2010년 10월부터 주오대학 부속학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